전기의 발견
전기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때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래서 철학자 탈레스가 나무 송진이 굳어져 생긴 호박을 모피로 문지르다 가벼운 물체가 끌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전기를 발견했다고 한다.
때문에 전기의 이름인 exelctricity는 고래 그리스어로 호박을 뜻하는 elektron 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6세기 윌리엄 길버트가 전기를 시기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를 통해 전기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생겨나고 전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런 마찰전기에서 화학적 방법으로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게 된 건 1800년 이탈리아의 과학자인 알렉산드로 볼타가 전기를 담아둘 수 있는 충전지를 발명하면서였다. 1882년 에디슨이 일류 최초의 발전소를 설치하고 백열전구를 발명하면서 전기공급을 위한 체계를 수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한민국의 전기의 역사
1887년 당시 고종과 명성황후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경복궁 건청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불이 밝혀졌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에 주위에 모여든 남녀노소들이 모두 감탄했다고 기록이 남겨져 있다. 당시만 해도 전기는 문명의 총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향원정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기는 당시 동양에서도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이었다고 한다.
향원정에 세워진 발전기로 인해서 연못 수언이 상승하여 물고기가 떼 죽임을 당하고 그 소리 또한 천둥 치는 듯했다고 한다.
이후 189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미국인 콜브란의 조언 아래 설립하였고, 이 회사는 주로 한성의 전차, 전등, 전화 사업 운영권을 허가받아 회사를 운영하였다. 이 회사가 설립되면서 서울 흥화문에서 동대문 간에 전차가 개통되었는데, 명성황후시해사건으로 명성황후가 시해가 된 후 명성황후 묻힌 홍릉을 자주 찾았던 고종황제는 '황실 전용 전차'를 보며 상여처럼 생겼다고 하여 잘 사용하지 않았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져 오고 있다.
한성전기회사는 전등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1901년이 되면 전등 보급이 더욱 확대되기 시작하였고, 정부의 고관대작, 외국사절, 상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행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지금의 충무로의 점등식은 서울을 떠들썩하게 만든 엄청난 행사였다고 한다.
사업의 확장으로 한성전기회사는 1944년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전체 발전 능력은 향상되었다. 특히 동양 최대 규모인 60만kW 하이 댐 방식의 수풍발전소와 22만V급의 동양 최초 초고압 송전시설은 당시 세계 전력 사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한성전기회사는 지금 한국전력의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전력 사업은 일본의 규제 아래 있었고, 당시 조선인들은 전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광복 후 당시 남한은 전력 사용량의 70%를 북한에서 공급받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5월 14일 남한 단독으로 총선이 치뤄지자 북한의 일방적인 단전초치를 감행하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단전으로 인해 남한의 주민들은 심각한 전력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당시의 혼란은 일제강점기에서조차 겪지 않았던 것으로 대중화 되었던 전기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은 전후 상황 전원복구 사업으로 전력공급에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고, 1961년 조선 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당시 주요 전력 3사가 통합되어 '한국전력 주식회사'가 창립되었다. 이로써 전력 산업은 다시 한국인의 손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인 전원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농어촌과 산골, 섬에 사는 주민들도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농어업의 생산성이 증가하였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한국전력의 전력 생산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고 전력 생산이 현저히 늘어났다. 또한 우리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전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연대에는 대규모 효율적 전력 생산과 환경을 함께 생각하는 기술인 원자력발전을 시작하게 된다. 원자력 발전을 도입하여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전력 생산 단가를 낮추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세계 21번째로 설된 고리 원자력 1호기는 우리나라 건설 사상 최대의 투자가 이루어 졌다. 제 3의 불이라고 불리는 원자력 발전은 한국표준형원전개발로 이어졌다. 이는 안전성과 운전 편리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세계 최첨단의 원전이고 원자력 발전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 이였다.
이후 한국전력은 미국 에디슨 전기협회로부터 에디슨 대상을 받게 된다. 에디슨 대상은 전 세계적으로 전력기술과 경영 성과가 세계 최고인 전력회사에 수여되는 상인데 1997년과 2006년 2회 받게 된다.
1995년에는 한국전력 설립 이후 최초의 해외사업으로 필리핀 말라야 발전소 운영 사업을 수주하였고, 2009년 세계 강국들과 경쟁하여 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게 된다.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 50년 만의 쾌거로 불리고 있는 이 해외원전 수출 성공은 우리나라의 전력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의 성장과 미래
우리나라 전기의 역사는 지켜볼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한국 전력산업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갈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하여 EMS 시스템을 활용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 산업은 점차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더욱 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전기 기술은 약 100년의 세월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낸 우리나라의 전기 기술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여타 선진국과 함께 할 만큼 발전을 해왔다. 현재는 한국전력공사의 경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또한 잘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혁신을 이루어 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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