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시작

커피가 세계적으로 어디에서 먼저 사용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서기 850년쯤 커피 섭취를 한 것과 에티오피아의 카파 주에서 커피나무가 발견된 것이 증명되었다. 에티오피아 내에서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에 커피는 빵에 발라먹는 스프레드형태로 먹고 마셨다고 한다.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에게 커피가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음료의 개념이 아닌 약재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이라고 불렀고 네덜란드어로 코피(koffie)로 였던 것이 영어로 들어간 것이다.

 

커피의 발견과 관련된 하나의 설이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목동으로 살던 칼디라는 사람이 염소를 키우고 있었는데, 칼디가 키우던 염소들이 저녁이면 돌아오지 않아서 찾으러 갔다가 커피나무에 열린 빨간 커피열매를 따먹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커피열매를 먹은 염소들은 잠도 자지 않고 뛰어다녔다. 칼디는 이 열매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먹어보았고, 각성 효과가 있음을 깨닿고. 인근 수도원의 수도자들에게 천국에서 온 열매라고 소개하자, 수도자들은 이 열매가 악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그 향기에 모두 빠져서 커피를 볶아 먹게 되었고 이후 다른 수도자들도 피곤함을 없애려고 직접 커피열매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커피콩에 물을 섞어 마시기 시작하여 커피음료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커피와 관련한 여러가지 설들이 있다.

 

조선시대에 커피가 들어오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기록된 것은 조선 후기 철종때이다. 조선 천주교회 4교구장이었던 베르뇌 신부가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보낸 편지에 '커피'가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고종이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것은 아관파천때라는 것보다도 36년이 앞서는 것이다.  편지의 내용에는 베르뇌 신부가 "커피20kg"을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커피는 이듬해 조선으로 입국한 랑드르 신부를 통해 잘 전달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베르뇌신부는 점차 더 많은 양을 요구하였던 것으로 보아, 함께 거주하던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과 나눠 마셨을 것으로 추측이된다. 리브와 신부가 쓴 기록물을 보면 조선에서 온 학생들이 음식이 맞지 않아 힘들어했지만 잘 적응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커피를 접한 최초의 한국인이 김대건 신부와 최씨 형제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에서 커피를 수입한 최초의 기록은 인천항이 개항한 18838수출입일람표에서   있다. 개항이 더 빠르게 이루어 졌다면 기록도 더 앞섰을 것같다.

 

1846병오박해 이후 부터 병인박해가 일어나까지 20년 동안 천주교 선교는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고종의 즉위가 이루어 질 때까지 신도는 2만여명이었고, 고종의 유모 또한 천주교 신자였다. 이렇듯 천주교의 전도와 함께 커피도 왕실에 전해졌을 수 있다는 논문이 있다.

아관파천이 이루어지기 13년 전부터 커피를 수입을 할  커피시장이 확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조선의 궁궐을 방문하는 귀한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하였다.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기록되어 있는 호러스 알렌은 경복에서 커피를 내어 주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이 시기에 커피가 유행이었음을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증언했다.

 

커피가 유행하다.

 

커피의 대중화는 조선 말기에 발행된 독립신문을 보면   있다. 신문에 광고가 실려 있었는데 1897320"정동의 '골스찰키'에서 자바 커피를 판매한다"라는 애용이 게재가 되었다. 1899서울전차가 개통된 이후에는 일반인들도 커피를 접할 수 있는 커피판매점이 등장했다.  또한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인천의 서구적 문화가 한양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한양에 거주하게 된 서양인들이 3천명정도 되었다. 커피는 고종이 국권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도구였다. 사실상 영빈관으로 활용되었단 손택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본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였다. 하지만 을사조약과 함께 이 호텔은 조선 침탈을 위한 아지트로 악용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 커피와 관련된 기록은   없다.

일제 시대에 커피는 일반인들을 거들떠도 볼 수없을 정도의 기호식품이었다. 당시 커피 한 잔은 10~15전이었는데, 조선인 노동자의 일당이 60~80전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미군부대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퍼지게 되었다. 당시 커피는 설탕을 첨가한 '서양탕국'으로 불리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값이 싸고 회충퇴치에 좋다는 소문이 널리 전해지며 커피가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주고객은 문화 예술인과 지식인들이었다.

 

커피의 존재감이 커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커피는 교과서에 실리게 될 정도로 대중화가 되었지만, 커피로서의 기품은 잃지 않았다. 다방이 지식이들 사이에서 낭만적인 공간으로 바뀌었고 점차 공연장으로 변모 했다. 1970년데는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다방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1976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물만 타면 커피가 되는 인스턴트 커피가 개발되었다.

1980년대부터 인스턴트 커피와 캔 커피가 대중화 되면서 다방은 전국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커피 프랜차이즈카페가 속속들이 생겼고, 스타벅스가 1999년에 처음 진출되었다. 현재 커피전문점, 카페프랜차이즈들은 점자 늘어나고 있고, 집에서도 직접 커피원두를 갈아 핸드드립해서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개항과 함께 늦게 들어온 감이 있지만, 요즘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커피의 잦은 섭취는 숙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취시간과  조절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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